나쁜 사마리아인들
프롤로그 : 나라가 부자가 되려면
최근 들어 여러 가지 문제를 겪고 있기는 하지만, 지난 45년간 한국의 경제 성장과 그로 인한 사회적 변화는 실로 괄목상대할 만한 것이었다.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가난한 나라에서 1인당 국민소득으로 볼 때 포르투갈이나 슬로베니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로 도약했다. 또 주요 수출품으로는 텅스텐 원광과 어류, 그리고 사람의 머리털로 만든 가발 정도나 꼽혔던 나라가 이제는 전 세계가 탐을 내는 맵시 있는 이동전화와 평면 TV를 수출하는 하이테크 강국이 되었다. 영양 공급 및 의료 기반의 개선으로 요즘 한국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기대 수명은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보다 무려 24살이 늘어난 77살에 달한다. 신생아 사망률은 1,000명당 78명에서 5명으로 줄어 과거처럼 자식을 잃은 슬픔에 가슴이 찢기는 듯한 고통을 맛봐야 하는 부모의 수도 대폭 줄었다. 이러한 수명 관련 지표의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 아이티가 스위스가 된 것만큼의 진보를 이루어 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신자유주의 주도자들은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기적의 세월 동안 한국이 신자유주의적 경제 발전 전략을 추구했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한국 정부는 이 기간 동안 민간 부문과의 협의 아래 특정한 새로운 산업을 선택하고, 보호 관세나 보조금을 비롯해 여러 가지 형태의 정부 지원을 통해 그 산업이 국제 경쟁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성숙’할 수 있도록 육성했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실질적으로 모든 은행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업의 생명줄인 대출까지 관리할 수 있었다. 또한 한국 정부는 부족한 외환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통제권을 행사했다. (외환 관리법을 위반한 사람은 사형을 받을 수도 있을 정도로) 한국 정부의 절대적인 외환 통제권은 신중하게 선정된 외환 사용의 우선순위 목록과 함께, 어렵게 벌어들인 외화가 중요한 기계설비류와 산업 원자재를 수입하는 데 우선적으로 사용되도록 보장했다. 한국 정부는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도 강력한 통제권을 행사해서 변화해 나가는 경제 개발 계획에 따라 특정한 부문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가 하면, 다른 특정한 부문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완전히 금지하는 식이었다. 또한 ‘역설계’를 격려하고, 특허 상품의 ‘위조품 제조’를 눈감아 주는 등 외국의 특허권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이처럼 한국의 경제 기적은 시장 인센티브와 국가 관리의 교묘하고도 실용적인 조합이 빚어낸 결과이다. 한국 정부는 공산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장을 말살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 정부가 자유 시장에 대해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의 경제 발전 전략은 시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시장이 정책 개입을 통해서 조정되어야 할 때가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한국의 사례가 ‘이단적인’ 정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선진국들은 거의 대부분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배치되는 정책 처방을 토대로 해서 부자 나라가 되었다. 자유 시장과 자유 무역의 본거지라고 여겨지는 영국과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랬던 부자 나라 사람들이 ‘우리가 했던 대로 하지 말고, 우리가 말하는 대로 하라’며 ‘나쁜 사마리아인’처럼 곤경에 처한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더 걱정스러운 것은, 요즘에는 아예 자신들이 권장하는 정책이 개발도상국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품은 의도가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이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가난한 나라들에 해를 끼치는 일을 그만두게 할 수 있느냐에 있다.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다시 읽기 - 세계화에 관한 신화와 진실
오늘날 도요타의 고급 승용차 렉서스는 세계화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는데, 이것은 미국의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라는 책 덕분이었다. 이 책에서 프리드먼은 세상의 절반은 보다 나은 렉서스를 만드는 일에 열중하는 데 반해, 나머지 절반은 누가 어떤 올리브 나무를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싸움에 열중해 있다고 지적했다. 프리드먼의 견해에 따르면, 올리브 나무 세상에 있는 나라들은 그가 ‘황금 구속복(golden straitjacket)’이라고 일컫는 특정한 경제 정책―국영 기업의 민영화, 안정된 물가 수준, 정부 조직의 규모 감축, 재정 균형의 달성, 무역의 자유화, 외국인 투자와 자본 시장에 대한 규제 해제, 외환 자유화, 부정부패의 감소 등―에 맞게끔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렉서스 세상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이 같은 프리드먼의 해석을 비롯하여 현재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세계화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해석은 자신의 나라를 경제적인 번영의 길로 이끌고자 하는 정책입안자들을 위한 지도로 간주될 정도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해석은 근본적으로 사실을 호도하고 있으며, 1945년 이후의 세계화에 대한 진실은 정사(正史)와는 완전히 상반된다. 1950~70년대는 국가주의적 정책에 의해 뒷받침되던 통제된 세계화의 시기였다. 반면 지난 25년간은 급격하고 통제되지 않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시기였다. 통제된 세계화 시기의 세계 경제는 최근에 비해 훨씬 빠르게 성장했고, 훨씬 안정적이었으며, 소득 분배도 훨씬 균등했다. 이런 현상은 특히 개발도상국들에서 두드러졌다. 그러나 정사는 이 통제된 세계화의 시기를 개발도상국들의 국가주의적 경제 정책이 끔찍한 재앙을 불러온 시기로 그리고 있는데, 이렇게 왜곡된 역사적 기록을 퍼뜨리는 의도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패를 감추고자 하는 데 있다.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반(反)혁명의 선두에 섰던 마거릿 대처 수상은 ‘대안이 없다’는 말로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물리친 적이 있는데, 세계화에 대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설명 방식에는 바로 이 ‘대안 없음’이라는 식의 분위기가 스며들어 있다. 즉,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세계화를 통신과 운송 기술의 거침없는 발전에서 비롯된 피할 수 없는 결과라고 말하기를 좋아하며, 자신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어느 올리브 나무를 차지할 것인지를 놓고 다투는’ 시대에 뒤떨어진 현대판 러다이트주의자들이라고 표현하기를 즐긴다. 하지만 세계화와 관련해서 불가항력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화의 주된 추진력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주장하듯 기술이 아니라 정치, 즉 인간의 의지와 결정이다. 만일 기술이 세계화의 정도를 결정한다면 (증기선과 유선전신에 의존하던) 1870년대보다 (인터넷을 제외하고는 모든 현대화된 운송과 통신 기술을 확보하고 있던) 1970년대에 세계화가 덜 진전된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기술은 세계화의 외부적인 경계를 규정지을 뿐이다. 엄밀하게 말해 세계화가 어떤 형태를 취할 것인지의 여부는 우리가 어떤 국가 정책을 만들고, 어떤 국제 협정을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이렇게 본다면 ‘대안 없음’이라는 명제는 잘못된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대안이, 그것도 한 가지가 아닌 다른 여러 가지 대안들이 있다.

다니엘 디포의 이중생활 -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가?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인 다니엘 디포는 토리당 정부를 위한 스파이 노릇을 하다가 나중에는 휘그당 정부를 위해서 스파이 노릇을 하는 이중생활을 했는데. 휘그당을 이끌던 월폴은 부패한 사람으로 유명했지만 매우 유능한 경제 관료였다. 월폴은 수상이 된 후, 1721년에 외국의 경쟁으로부터 영국 제조업을 보호하고 수출을 장려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한다. 그에 따라 수입된 외국 공산품에 대한 관세는 크게 올랐고, 제조업에 사용되는 원자재에 대한 관세는 크게 낮아지거나 아예 폐지되었으며, 공산품 수출은 수출 보조금을 비롯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장려되었다. 또 마지막에는 파렴치한 제조업자들이 해외 시장에서 영국산 상품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공산품들, 그 중에서도 특히 직물 제품의 품질을 관리하기 위한 규제까지 도입되었다. 월폴의 이런 보호 무역 정책은 다음 세기에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고, 그 덕택에 영국 제조업은 유럽 대륙의 제조업을 따라잡은 것은 물론, 결국에는 앞서 나가게 되었다. 영국은 이렇듯 19세기 중반까지 고도의 보호 무역 국가였다. 영국은 관세뿐만 아니라 식민지에서의 선진적인 제조 활동에 대해 무조건적인 금지령을 내렸고, 식민지들이 자국의 제품과 경쟁하게 될 만한 제품을 자국이나 해외로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으며, 최종적으로 식민지에 대해 1차 상품의 생산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쳤다.

미국에서도 알렉산더 해밀턴을 중심으로 하여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제조업을 발전시켜야 하며, 그것을 목표로 정부의 보호와 보조금 정책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해밀턴은 1791년 미국 의회에 「제조업에 관한 보고」를 제출했다. 그는 여기에서 미국이 산업 발전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의 견해의 핵심은 미국과 같은 후진적인 나라는 외국의 경쟁으로부터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그 산업들이 자기 발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국의 산업 발전을 이루기 위한 일련의 방법을 제안했다. 그 방법 가운데는 보호 관세와 수입 금지령, 보조금, 핵심 원자재의 수출 금지령, 산업 원자재에 대한 수입 자유화와 관세 리베이트, 발명품에 대한 포상과 특허 부여, 상품의 표준에 대한 법령 제정, 금융과 운송의 하부 구조 개발 등이 포함된다. 비록 해밀턴은 자신의 프로그램을 보다 진전시킬 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결국 1820년대에 가서 그의 프로그램은 하나도 빠짐없이 미국의 정책으로 채택되었다. 또한 미국은 이후 19세기 내내, 그리고 1930년대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보호 무역 국가였다. 그럼에도 미국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다.

이처럼 자유 무역의 옹호국인 영국과 미국 두 나라의 경우 세계를 지배하는 산업 강국이 되기 전까지는 자유 무역 경제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부자 나라들 가운데서도 가장 심하게 보호 무역을 실시했던 나라였다. 흔히 보호 무역주의의 본가처럼 알려진 프랑스나 독일, 일본 세 나라도 늘상 영국이나 미국보다 관세가 훨씬 낮았다. (물론 이는 영국과 미국이 경제적인 우세를 점한 후 자유 무역으로 선회하기 이전의 이야기이다.) 물론 다른 부자 나라들도 영국과 미국처럼 유치산업을 장려하기 위해 (관세, 보조금, 외국 무역에 대한 규제와 같은) 국가주의적인 정책을 사용했다. 결국 우리는 역사를 통해 거의 모든 부자 나라들이 자국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보호와 보조금, 규제 정책을 혼합하여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동시에 부자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을 상대로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면서 자유 시장, 자유 무역 정책을 강요해 왔다는 사실 역시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여섯 살 먹은 내 아들은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 자유 무역이 언제나 정답인가?
자유 무역주의 경제학자들은 개발도상국의 생산자들이 생존을 위해 자신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려는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지금 당장 가능한 한 경쟁에 많이 노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기 부여 외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능력이다. 만약 여섯 살 난 나의 아들 진규가 지금 학교를 그만둔다면 설령 2,000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보수를 주겠다는 제의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이 있다 해도, 어려운 뇌수술을 성공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발도상국의 산업 역시 너무 일찍부터 국제적인 경쟁에 노출되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선진 기술을 익히고 효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등의 능력을 키워 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초대 재무 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이 처음으로 이론화하고, 그 이전과 이후의 정책 입안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서 사용해 온 유치산업 이론의 핵심이다.

자유 무역은 좋은 것이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정통파의 핵심 이론이다.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있어 이것은 너무나 자명한 전제이다. 이들은 무역 자유화가 전체적으로 볼 때 이득이 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득을 본 사람들이 얻은 이득이 손해를 본 사람들이 잃은 것보다 많으므로, 이득을 본 사람들은 손해를 본 사람들이 입은 손해를 모두 보상하고 나서도 자기 몫으로 챙길 것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무역 자유화가 반드시 이득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무역 자유화의 과정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얻는 이득이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입은 손해만큼 많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무역 자유화는 성장률을 감소시키고 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는데, 실제로 지난 20년 동안 이런 일들이 수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일어났다. 뿐만 아니라 이득을 본 사람들이 손해를 입은 사람들의 손해보다 더 많은 이득을 본다 하더라도 시장의 작용을 통해서 그 보상 과정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만큼 예전보다 더 가난해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유 무역주의 이론이 주어진 자원을 단기간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하는가와 관련된 이론이지, 장기적인 경제 발전을 통해서 가용 자원을 늘려가는 것과 관련된 이론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쁜 사마리아인은 부자 나라들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 무역을 권장하면서, 자신들이 모두 완전한 자유 무역은 아니더라도 그에 가까운 무역을 하고 있다는 걸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여섯 살 먹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보고, 성공한 어른들은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또한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는 논리를 들이대면서 여섯 살 먹은 그 아이를 일터로 보내라고 충고하는 것과 같다. 성공한 어른들은 성공을 했기 때문에 자립을 한 것이지,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을 한 것이 아니다. 요컨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무역 자유화는 경제 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 발전의 결과이다. 그럼에도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과거 자국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효과적으로 써먹었던 무역과 산업 정책의 여러 가지 도구들을 가난한 나라들이 사용할 수 없게끔 방해하고 있다.

한편 무역이 경제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논리와 자유 무역이 경제 발전에 가장 좋다(또는 무역이 자유로울수록 더 좋다)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논리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자유 무역을 해야만 국제 무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성공 비결은 새로운 유치산업이 발전하여 노련해지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지게 됨에 따라 보호하는 분야를 끊임없이 바꾸어가면서 보호와 개방 무역 정책을 적절하게 혼합한 데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 대단한 ‘비결’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오늘날의 부자 나라들 대부분이 부유해진 비결이며, 최근에 성공을 이룬 개발도상국들이 성공을 거둔 비결과 똑같은 것이다. 보호가 발전을 보증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보호가 없는 발전은 무척이나 어렵다.

핀란드 사람과 코끼리 - 외국인 투자는 규제해야 하는가?
흔히 개발도상국으로 흘러드는 외국 자본 중에서 회사 경영에 일상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지분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다른 형태의 외국 자본의 흐름과 달리 안정적이며, 돈뿐만 아니라 조직 및 기능 기술의 향상을 가져옴으로써 투자 유치국의 생산 능력을 향상시키는 ‘테레사 수녀님 같은 외국 자본’으로 환대 받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 직접투자에도 한계가 있고 문제점은 있다. 첫째,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개발도상국들의 금융 혼란 시기에 외국인 직접투자의 흐름이 매우 안정적이었다고 하지만 모든 나라에서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외국인 직접투자가 언제나 안정적인 외화 공급원으로 기능한 것은 아닐뿐더러, 투자 유치국의 외환 보유고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의 또 하나의 단점은 둘 이상의 나라에서 활동하는 초국적기업(TNC)들에게 ‘이전 가격 조작’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즉, 법인세율이 가장 낮은 나라에서 활동하는 자회사가 가장 높은 이윤을 올릴 수 있도록 초국적기업 자회사들끼리 서로 지나치게 싸거나 지나치게 비싸게 거래―40달러짜리 볼리비아산 로켓 발사 장치, 528달러짜리 미국산 불도저처럼 어이없을 정도로 싸게 매겨진 수출 사례가 있는가 하면, 한 개에 5,484달러인 독일산 쇠톱 날, 4,896달러인 일본산 족집게 등 눈이 튀어나올 만큼 비싼 가격을 매긴 수입 사례도 있다―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또한 외국인 직접투자 덕분에 기술 및 경영 노하우가 이전될 것이라고 기대하는데, 그조차도 근거가 분명하지 않다. 외국인 직접투자라고 하면 흔히 인텔이 코스타리카에 설립한 새로운 마이크로칩 공장이나, 폭스바겐이 중국에 설립한 조립 라인을 떠올리곤 한다. 이런 종류의 투자를 ‘그린 필드’ 투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외국인 직접투자는 이미 설립된 회사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브라운 필드’ 투자라고 한다―가 많은데, 이 경우에는 새로운 생산설비를 추가하지 않는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새로운 경영 기법이나 우수한 엔지니어의 공급으로 생산 능력 증대에 이바지할 수는 있다. 다만 그렇게 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브라운 필드 투자는 또 인수한 회사의 생산 능력을 향상시킬 의도가 없는 경우도 많다. 외국인 직접투자자들은 금융 위기의 시기에 시장에서 과소평가를 받고 있다고 판단되는 회사를 인수한 다음, 다른 적당한 인수자를 찾을 때까지만 예전과 똑같이 회사를 운영할 수도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로 인한 영향 가운데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쉽게 간과되는 것이 (현재와 미래의) 국내 경쟁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즉, 외국인 직접투자를 통해 초국적기업이 진입하게 되면, 때 이른 경쟁에 노출되지만 않는다면 ‘성장’해서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도 있는 국내 기업들을 파괴하거나 국내 경쟁자의 출현을 막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비록 투자 유치국의 단기적인 생산 능력은 향상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해당 국가가 장기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생산 능력의 수준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초국적기업들이 핵심적인 활동을 본국 밖으로 이전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초국적기업의 자회사가 장기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수준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기업의 국적은 중요하다. 각각의 자회사들이 어느 정도 고도화된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해당 기업을 소유한 사람의 몫이다. 때문에 자본이 더 이상 나라라는 뿌리를 가지지 않는다는 가정에 입각하여 경제 정책을 구상하는 것은 대단히 순진한 행위이다.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는 특히나 그렇다. 마지막으로 초국적기업들이 반드시 외국인 직접투자를 규제하는 나라를 피해 갈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신자유주의 정통파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외국인 투자의 유입 수준을 결정하는 데 있어 규제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이 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투자 유치국의 (시장의 크기와 성장 같은) 시장 잠재력, 노동력과 사회간접자본의 우수성 같은 사항들이다. 즉, 규제 체계가 아무리 개방적이라 해도 해당 국가의 경제가 매력적인 시장과 높은 품질의 생산 자원을 제공하지 않으면 외국 기업들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는 것보다 나쁜 딱 한 가지는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외국인 투자, 그중에서도 특히 외국인 직접투자는 경제 발전에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외국인 투자가 얼마나 유용한지의 여부는 진행되는 투자의 종류와 투자 유치국 정부가 규제를 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20세기 초까지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경제였던) 핀란드가 외국인 투자가 지나치게 일찍 자유화되면 자국 기업이 독립적으로 기술적 경영적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질 것이라는 인식에 기초하여 외국인 투자 전략을 구사해서 성공했던 것처럼 외국인 직접투자 정책은 장기적으로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할 수도 있는 국내 생산자들을 고사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구상되어야 한다. 또한 외국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선진적인 기술과 경영 기법들이 최대한도로 국내 기업에 이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간이 인간을 착취한다 - 민간 기업은 좋고, 공기업은 나쁜가?
국영 기업에 반대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생각은 단순하지만 강력한 개념에서 비롯된다. 바로 사람은 자신의 소유물이 아닐 경우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인 대리인 문제, 무임승차 문제, 연성예산 제약 등의 원인으로 인해 국영 기업은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오직 국영 기업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성과가 부진한 국영 기업들이 전 세계적으로 많지만, 단지 공기업의 부진한 성과와 관련하여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대로 ‘불가피한’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반드시 민영화를 해야만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 이론적으로 볼 때도 공기업이 민간 기업보다 우월한 상황이 존재한다. 그중 한 가지 상황은 장기적으로는 성공 가능성이 있지만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판단되는 모험적인 사업에 민간 부문의 투자자들이 자금을 대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이다. 즉,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자본 시장의 실패’가 발생할 때에는 국가가 설립한 국영 기업이 그 일을 맡을 수 있다. 또한 국영 기업은 ‘자연 독점’이 있는 분야―전기,수도,가스,철도, 그리고 전화 같은 것―에도 설립될 수 있다. 정부가 국영 기업을 설립하는 세 번째 이유는 국민들 사이에서 형평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간 기업에게 맡겨 둘 경우 외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우편, 수도, 교통 등의 중요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워진다.

국영 기업의 운영과 관련된 상황은 복잡하다. 좋은 성과를 내는 기업도 있고, 나쁜 성과를 내는 기업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영화는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길이 될 수도 있지만, 재앙으로 다가서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필수적인 규제 능력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민영화가 올바른 해결 방안이라 해도 실제로 민영화에 성공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정부의 세금 징수 능력 혹은 규제 능력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경우에는 자연 독점 산업에 속하는 기업들이나 대규모 투자와 높은 위험도를 수반하는 산업에 속하는 기업들, 그리고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국영 기업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굳이 민영화 방식을 채택하지 않더라도 국영 기업의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이때 중요한 일은 해당 기업이 가진 여러 가지 목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감독 시스템의 개선이나 경쟁의 증가 등은 국영 기업의 성과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국영 기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단방약’ 같은 해법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국영 기업의 운영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이 했던 “쥐를 잡을 수만 있다면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따질 필요가 없다”라는 유명한 말에 깃들어 있는 실용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1997년에 만난 윈도 98 - 아이디어의 ‘차용’은 잘못인가?
슘페터는 기술 혁신자가 모방 시차, 명성의 우위, 그리고 ‘학습 곡선 경우에 있어서’ 출발의 우위 등의 메커니즘을 통해서 확보할 수 있는 독점 수익―그의 표현으로는 ‘기업가적 이윤’―이 새로운 지식 창출에 대한 투자를 유인하는 데 충분한 동기가 된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유명한 혁신 이론에서 특허를 전혀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의 산업에서는 이러한 자연발생적 우위로 인한 일시적 독점 이윤만으로도 혁신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된다. 물론 제약을 비롯한 화학,소프트웨어,연예 등 비교적 복제가 용이한 특정 산업에는 특허가 중요하다. 또한 나는 지적소유권이 비효율성과 낭비를 낳을 가능성이 있지만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그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특허권을 비롯한 지적소유권의 보호를 지지한다. 그러나 특허 제도의 잠재적인 이익을 인정한다 해서 그 제도로 인한 비용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만일 특허 제도를 잘못 설계하여 특허권자를 지나치게 보호한다면, 그 제도는 이익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창출할 것이다.

지적소유권 보호 제도의 가장 치명적인 영향은 경제 발전을 위해 선진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술 후진국으로 지식이 흘러들어 가는 것을 차단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 발전의 핵심은 선진국인 외국 기술의 흡수이다. 그런데 현재 추진되고 있는 새로운 지적소유권 제도가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부자 나라들이 전체 특허의 97%를, 그리고 저작권 및 상표권의 대다수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적소유권 보유자들의 권리가 강화되면, 개발도상국의 지식 획득 비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기술 사용료의 증가로 인한 개발도상국의 추가 부담은 급격히 늘고 있으며, 저작권 강화로 인하여 교육, 특히 전문화되고 선진적인 외국 책들을 사용하는 고등 교육의 비용 역시 점점 상승하고 있다. 또한 각 개발도상국이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 협정에 따르려면 새로운 지적소유권 제도를 세우고 실행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 지적소유권 제도는 자동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다. 자원이 한정된 국가에서 더 많은 특허 법률가들을 훈련하고 DVD 복제자들을 적발할 감독관들을 더 많이 고용하려면, 의사들과 교사들에 대한 훈련을 줄이고 간호사들이나 경찰관들의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개발도상국들은 불어난 사용료를 지불하고 새로운 지적소유권 제도의 실행에 필요한 추가 비용을 감당한다 해도 아무런 대가를 얻을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즉, 개발도상국은 연구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인센티브가 높아진다 해도 그 인센티브를 활용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결국 지적소유권에 대한 국제적 보호가 강화되면 될수록 후발 국가들의 새로운 지식 획득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지식을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물에 비유한다면, 오늘날의 지적소유권 제도는 비옥한 경지가 될 가능성이 있는 땅으로 흘러드는 물을 막아 기술의 황무지로 바꾸어 놓는 댐과 같다. 이런 상황은 뜯어고쳐야 마땅하다. 물론 특허권, 저작권 혹은 상표권을 철폐하자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보호는 지식 창조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신 현재 널리 퍼져 있는 지적소유권 보호의 강도를 약화시켜야 한다. 즉, 지적소유권 보호 기간을 단축하고, 독창성 기준을 높이고, 강제 인가와 병행 수입의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

미션 임파서블? - 재정 건전성의 한계
신자유주의자들은 물가 상승을 공공의 적 1호로 간주한다. 이들은 낮은 물가 상승률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두 가지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첫째, 통화량 규제가 있어야 한다. 즉 중앙은행이 경제의 실질적인 성장을 유지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양 이상으로 통화 공급을 늘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는 어떠한 정부도 세입을 넘어서는 지출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1980년대 및 1990년대 초 아르헨티나의 경험처럼 급속한 물가 상승이 합리적인 경제적 계산의 기초 자체를 흔들어 놓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극심한 물가 상승의 파괴적 성격을 인정하는 것과 물가 상승률이 낮을수록 좋다고 주장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논리적 비약이 있다. 적당한 물가 상승은 반드시 해로운 것이 아니며, 심지어 급속한 성장 및 고용 창출과 양립할 수도 있다. 경제가 변화하면 물가가 변하는 법이니,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새로운 경제 활동이 많은 경제에서는 물가가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자들은 적당한 것이든 아니든 모든 물가 상승은 나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물가 상승은 고정된 수입을 가진 사람들, 특히 전체 인구 중에서 가장 약한 집단인 노동자와 연금 수급자에게 더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반쪽짜리 진실일 뿐이다. 물가 상승률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엄격한 금융,재정 정책은 경제 활동의 수준을 저하시킬 수 있으며, 이는 결국 노동 수요의 감축, 실업 증대, 그리고 임금 감소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따라서 낮은 물가 상승률은 노동자들이 이미 벌어 놓은 수입은 더 잘 보호하지만, 반대로 노동자들의 미래 수입을 감소시키는 양날의 칼이다.

재정 건전성에 대한 강조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권장하는 신자유주의 거시경제학의 핵심 주제이다. 이들에 따르면 적자 지출은 물가 상승을 초래하여 경제 안정성을 해치고, 따라서 성장을 감소시키고 고정된 수입으로 사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표리부동하게도 부자 나라들은 경제 침체기가 도래하면 자신들이 가난한 나라들에게 제시했던 일들―이자율을 높인다든가, 예산 흑자를 운용하는 것―을 실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21세기 초에 미국 경제가 이른바 닷컴의 거품 경제 붕괴와 9 11 세계무역센터 폭파 사건의 여파로 휘청거리고 있을 때, ‘책임성 있는 재정 정책’을 편다던 조지 부시 대통령의 반(反)케인즈주의적 공화당 정부가 취한 해결책은 재정 적자 지출과 유례없이 느슨한 통화 정책이었다. 그 결과 2003년과 2004년의 미국 예산 적자는 국내총생산의 4% 수준에 달하게 되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권유하는 ‘건전한’ 금융 정책 또한 개발도상국의 거시경제 운용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낳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BIS 자본 적정 비율이다. BIS 비율은 은행 대출을 자기자본 규모의 변화와 연계하여 변동시킬 것을 요구하는데, 이는 경제의 순환 주기에 따라 은행의 자본 규모가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은행은 경제 호황기에는 자산 가격의 급등으로 인하여 자기자본 규모가 팽창하기 때문에 보유 자산의 가치가 본질적으로 증가하지 않았더라도 대출을 증가할 수 있고, 이는 결국 경기 팽창으로 이어져 경제를 과열시키게 된다. 반면 경기 침체기에는 자산 가치가 떨어짐에 따라 은행의 자본 규모가 축소되기 때문에 은행은 대출을 회수하게 되고, 이로 인해 경제는 더욱 하강하게 된다. 이렇듯 개별 은행이 BIS의 자본 적정 비율을 준수하는 것은 건전하다고 할 수는 있으나, 모든 은행이 이를 따른다면 경제 순환 주기는 크게 증폭되어 결국 은행 자체에 손실을 입힐 것이다.

이처럼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와 성장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거시경제 정책을 개발도상국에게 강요하고 있다. ‘세입을 초과한 지출’을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비난하는 그들의 태도는 개발도상국들이 경제 성장을 가속화하기 위하여 ‘투자를 위한 차입’을 하는 것을 막고 있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사람들을 싸잡아서 비난한다면,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 개발이나 자녀 교육에 투자하기 위해서 대출을 받는 것도 비난받을 일이 된다. 이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개발도상국들은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부자 나라들이 사용하는 정책에 비해서 보다 투자 지향적이며 성장 지향적인 거시경제 정책을, 그리고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지금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거시경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자이레 대 인도네시아 -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나라에는 등을 돌려야 하는가?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부패는 큰 문제이다. 그런데 부정부패가 심한 나라들 가운데는 자이레(지금은 콩고 민주공화국)나 아이티같이 경제적인 성과가 형편없는 나라가 많지만, 인도네시아처럼 상당한 성과를 올리는 나라도 있고, 19세기 말의 미국이나 2차 세계 대전 후 동아시아 국가들처럼 아주 좋은 성과를 올리는 나라도 있다. 부정부패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해당 부패 행위가 어떤 결정에 영향을 미치느냐, 뇌물을 받은 사람이 뇌물을 어떻게 쓰느냐, 그리고 만일 부패가 없었다면 뇌물이 과연 어떻게 쓰일 수 있었느냐에 따라 다르다. 이에 더해 (부패한 공무원이 어떤 종류의 ‘편의’를 봐줄 경우 ‘공정 가격’이 있는지의 여부 같은) 부정부패의 예측 가능성이나 (허가 하나를 받기 위해 몇 사람에게 뇌물을 주어야 하는지의 여부 같은) 뇌물 시장에서 ‘독점’의 정도 등의 문제에 대한 논의도 추가할 수 있다. 요컨대 이런 모든 요소들의 복합된 결과를 예측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바로 이 때문에 부정부패와 경제적 성과 사이의 관계는 나라마다 크게 다른 것이다.

부정부패와 더불어 신자유주의 정책 아젠다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또 하나의 정치 문제가 바로 민주주의이다. 이에 대해 신자유주의자들 사이에서는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이 상호 보완적인 것이라는 확고한 합의가 존재한다. 이들은 민주주의가 자유 시장을 촉진하고, 자유 시장이 경제 발전을 촉진하고, 경제 발전이 다시 민주주의를 촉진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폭력적 수단을 통하지 않고도 권력의 자리에서 밀려날 수 있는 정부는 약탈적인 행동을 자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자유 시장을 촉진한다고 말한다. 과연 이처럼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은 실제로 천생연분이며 상호 보완적인 관계일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시장과 민주주의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충돌한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시장은 ‘1달러 1표’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민주적인 결정은 대개 시장의 논리를 뒤엎는다. 이처럼 민주주의와 시장 사이에 근본적인 긴장 관계가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자유 시장을 활성화시킴으로써 경제 발전을 촉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만약 민주주의가 경제 발전을 촉진한다면, 이것은 대개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주장처럼 자유 시장의 촉진 때문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이 분야에서 권장하고 있는 정책들은 부정부패와 취약한 민주주의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악화시키는 경우가 더 많다. 경제 일반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면, 그리고 정부 관리 정책에 시장 기능을 확대 도입하면, 부정부패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대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무역 자유화를 강요함으로써 의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부정부패를 키우고 있다. 무역 자유화로 인한 정부 세입의 감소는 공무원의 봉급을 압박하고, 하급 공무원의 사소한 부정부패를 키운다. 규제 완화의 경우에도 이것은 시장의 영역을 확장하고, 민주주의의 영역을 축소시킨다.

물론 민주주의가 경제적 성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가 있어야만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민주주의는 공직, 법원의 판결, 학위 같은 것들이 시장의 ‘1달러 1표’ 원칙에 의해 훼손되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공평한 사회 건설에 도움이 된다. 이에 더해 민주적인 정치 과정에의 참여는 화폐 가치로는 쉽게 환산될 수 없는 본질적인 가치를 가진다. 따라서 비록 민주주의가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할지라도 그 본질적인 가치 때문에 민주주의를 지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구나 민주주의가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더욱 강력하게 민주주의를 지지해야 한다. 다만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그리고 경제 발전 사이에 효과적인 순환이 존재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며, 그들이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관계가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필로그 : 세상은 나아질 수 있을까?
가난한 나라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이들은 시장에 대항하여 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보다 어려운 일을 해야 한다. 물론 능력을 기르는 데 투자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당연히 희생이 따른다. 현재를 희생해서 미래를 개선하라는, 간단하지만 강력한 이 원칙 때문에 미국인들은 19세기에 자유 무역을 실시하지 않았다. 바로 이것 때문에 얼마 전까지도 핀란드 사람들은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지 않았고, 한국 정부는 1960년대에 세계은행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철소를 건설했다. 이처럼 능력의 향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 뒤에는 제조업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투자해야 한다. 역사는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를 근본적으로 나누어 놓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부자 나라들의 우수한 제조업 능력이라는 사실을 되풀이해서 보여주고 있다. 제조업은 일반적으로 농업이나 서비스업에 비해 생산성이 높고, 더 중요하게는 생산성이 훨씬 빠른 속도로 향상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현대는 탈공업화 시대이니만큼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서비스를 파는 것이라는 근거에서 이런 주장을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은행업을 비롯한 금융서비스나 경영컨설팅, IT 지원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다른 서비스업들은 생산성이 낮고, 더 중요하게는 그 성질상 생산성 향상의 여지가 거의 없다. 게다가 생산성이 높은 서비스를 요구하는 주요한 원천은 대부분 제조업체들에 있다. 따라서 제조업 부문이 튼튼하지 않을 경우에는 생산성이 높은 서비스업을 개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자유 무역 경제학자들이 농업에 집중하라고 권장하고, 탈공업화를 부르짖는 경제 예언가들이 서비스를 개발하라고 선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은 번영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아닐지 몰라도) 가장 중요한 길이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개발도상국들이 자국의 발전에 ‘알맞은’ 정책을 추구하는 것을 갈수록 어렵게 만들어 왔다. 이들은 IMF, 세계은행, 그리고 WTO라는 사악한 삼총사와, 지역별 FTA나 투자협정을 이용해 개발도상국들이 이런 능력을 갖지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경기장을 평평하게 해야 한다’는 개념을 계속 들먹인다. 하지만 나는 이의를 제기한다. 국제 경쟁은 수준이 비슷하지 않은 경기자들이 참여하는 게임이다. 우리 개발 경제학자들이 흔히 하는 말로 하자면, 스위스에서 스와질란드에 이르는 모든 나라들이 맞붙어 싸우게 되어 있다. 따라서 약한 나라에게 유리하도록 ‘경기장을 기울게 만드는 것’이 공정하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약한 나라들이 자국의 생산자들에 대한 보호와 보조금 정책을 보다 강력하게 실시하고, 외국인 투자에 대해 보다 엄격하게 규제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 국가가 선진적인 나라들로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차용’할 수 있도록 지적소유권 보호를 완화하는 것도 허용되어야 한다. 또 부자 나라들은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가난한 나라들에게 기술을 이전해 줌으로써 이들을 도울 수도 있다. 나쁜 사마리아인 국가들에게도 개발도상국의 신속한 성장을 유도하는 ‘이단적인’ 정책들을 용인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이득이 된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참된 희망을 주는 것은, 나쁜 사마리아인들 가운데 대다수가 탐욕스럽지도 않고 편협하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마셜 플랜이 발표된 뒤부터 1970년대 신자유주의가 융성하기 전까지의 기간과 같이 부자 나라들이 과거에 나쁜 사마리아인들처럼 행동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 역사적인 시기에 개발도상국 세계는 그 이전과 그 이후를 통틀어 경제적으로 가장 높은 성과를 올렸다. 그 경험에서 교훈을 찾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 의무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지음, 부키
by 시간여행 | 2008/01/26 22:11 | 경제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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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puha375 at 2008/04/17 09:10
귀중한 자료 소중하게 보겠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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